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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사회과학연구소]세월호는 왜 침몰했는가
  nuwu Date : 2014-06-11 17:27:27 | hit : 1409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우리는 ≪정세와 노동≫ 5월 17일 세월호 학살 특별호, “정부는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을 은폐하고 있다 (클릭하시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라는 글에서 침몰 원인을 추정한 바 있다. 그 후 자료들이 추가로 발표되었고, 새롭게 해석이 필요한 것들도 생겼다. 이 글에서는 항적을 주요 자료로 살펴보며, 기존의 시각을 수정ㆍ보완하였다. 이전의 글과 함께 보면 좋겠다.

 

1. 사고는 4월 15일 밤 11시경, 울도 인근(태안반도 서쪽)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아래 [그림 1]은, ‘뚜벅이’라는 필명의 아고라의 논객이 “중국에서 운영하는 상업용 AIS(선박 자동식별 장치) 수신 기록을 월 사용료를 내고 확인, 캡쳐, 정리한 내용”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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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중국 상업용 세월호 전체 항적도

그리고 정부가 발표한 항적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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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전체 항적도

육안으로 보아서 두 항적이 유사하다. 정부의 항적이 위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더 정밀하다. 정부항적을 보자. 배는 통상항로를 중앙선으로 삼아 우측통행을 하는데, 대개 5-10km정도를 벗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군산 앞바다에서 보이는 통상항로와 겹치게 보이는 항로를 정상 항로로 보아야 한다. 정부의 항적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보아야 하는 것은 위도 37N과 경도 126E가 교차하는 점을 전후하여 세월호가 크게 통상항로를 서쪽으로 이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이탈을 하였을까. 인천항에는 안개가 짙었지만,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이 부근에서는 안개가 없었다. 인천항을 출발하면서 항로와 항적이 거의 일치하다, 곧 갈라지기 시작한다. 항구의 복잡한 부분을 벗어나자 곧바로 자동항법장치에 의존하고, 이것이 오작동을 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의심해 볼 수 있다.

위도 37N과 경도 126E가 교차하는 점([그림 3]에서 표시된 지점) 바로 위에는 울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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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울도 부근 지도

울도 부근을 확대하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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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울도 부근 지도(확대)

아래 [그림 5]는 국립해양조사원이 제공하는 4월 15일자 항행경보판2)이다. 울도 부근은 사격훈련구역이다. 그리고 4월 14일-20일까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격훈련이 있어서3), 항해금지구역이었다. 금지구역의 범위는 울도 우측과 그 우측상부의 선갑도의 우측지점까지임을 알 수 있다. 금지구역의 뾰쪽한 상부 우측 끝은, 항해로인 덕적도와 대이작도 사이와 경도상으로 거의 같다.

이 지역에서 인천-제주 간 정상 항로는 아래 [그림 6]의 <다음> 지도에서 울도 동쪽을 남북으로 지나는 선이다.

그런데 세월호는 바로 여기서, 덕적도와 대이작도 사이를 빠져 나오면서 서쪽으로 크게 항로를 이탈했다. 정부가 발표한 [그림 2]의 “세월호 전체 항적도”와 [그림 5]의 항행경보판을 육안으로 비교해 보아도, 덕적도와 대이작도 사이를 빠져 나온 직후(북위 37도선 바로 윗부분)에, 선갑도 동쪽에서 분명히 금지구역을 침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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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4월 15일자 항행경보상황판 (울도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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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울도 부근 지도

이 부근에서의 세월호 속도를 보자.

<세월호 속도>4)

4/15일 21:12:28, 10.9노트, 206deg (인천항 앞)

4/15일 22:27:55, 19.9노트, 221.6deg (자월도 북쪽해상)

4/15일 22:51:00, 21노트, 208deg (덕적도, 대이작도 사이를 지난 직후)
  4/15일 23:18:54, 19.3노트, 205.7deg (울도 앞)
4/16일 02:18:53, 17.6노트, 187.2deg (어청도 앞)

4/16일 03:10:59, 17.3노트, 186deg (군산 서쪽 해상)

4/16일 04:16:18, 17.9노트, 186.6deg (하왕등도 서쪽 해상)

4/16일 05:04:00, 18.5노트, 186.6deg (안마도 서쪽 해상)

4/16일 06:05:47, 20노트, 191.7deg (임자도와 자온도 사이의 서쪽해상)
4/16일 07:05:19, 20.9노트, 165.1deg (흑산도 동쪽 해상)
4/16일 08:07:08, 20.1노트, 155.4deg (외병도 서쪽 해상, 맹골수로 진입 직전)

4/16일 08:29:36, 19.2노트, 136.7deg (맹골군도와 거차군도 사이, 맹골수로)
4/16일 08:40:22, 19노트, 128.5deg (맹골수로를 지나고 병풍도 북서쪽 해상)
4/16일 08:44:05, 18.6노트, 129.4deg (병풍도 정북쪽 해상)
4/16일 08:45:35, 18.3노트, 135deg (병풍도 북동쪽)
4/16일 08:46:46, 18.2노트, 137.9deg (병풍도 북동쪽, 병풍도 기준 2시 방향)
4/16일 08:48:15, 17.5노트, 137.6deg (병풍도 동쪽)
4/16일 08:49:32, 16.5노트, 159.1deg (병풍도 정동쪽, 급격한 변침으로 알려진 시점)
4/16일 09:02:15, 1.7노트, 357.6deg (병풍도 동쪽, 표류 중)

덕적도, 대이작도 사이를 지난 직후에 21노트로 세월호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를 낸다. 안개로 출발이 2시간 반 늦어진 밤 9시에 출발을 해서, 제주에 가능한 빠른 시간에 도착하려고 최고 속도를 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덕적도와 대이작도를 빠져나오면, 붐비는 인천항이 멀어지고, 섬들이 사라지며 바다도 깊어진다. 2시간가량을 운행했으니 엔진도 탄력을 받는다. 따라서 정상적으로라면 울도 부근에서도 그 속도를 유지했어야 한다. 상황은 더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울도 앞에서 19.3노트로 속도가 뚝 떨어지고 안마도 서쪽 해상까지도 18.5노트 이하로 달린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전 구간에서 최고 속도인 21노트를 회복하지 못한다. 흑산도 동쪽 해상에서 20.9노트까지 올리더니 이후로 다시 떨어진다.

우리는 여기서 울도 부근에서 배에 어떤 사고가 나서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어느 정도 응급조치가 되었지만, 더 이상은 최고 성능을 낼 수 없게 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면 4월 15일 11시경(23:18:54)에, 울도 부근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세월호 생존자의 증언을 들어 보자.

구조자 서희근(54) 씨는 이날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읍 실내체육관에서 여객선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15일 오후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 전북 군산 인근 바다를 지나던 배가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었다”고 밝혔다.

서씨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밖으로 나가 확인했지만 파도는 잔잔했다”며 “배가 크게 흔들릴 정도의 기상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5)

이 증언자는 15일 오후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에 전북 군산 인근 바다를 지나던 중 어떤 사고가 났다고 한다. 그런데 위의 “세월호 속도”에서 보면 4월 16일 03:10:59에 군산 서쪽 해상을 지난다고 되어 있다. 11시경에는 울도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이 증언자의 또 다른 기사도 있다.6)

◆ 서희근: 배가 나가서 저기 인천대교 지나자마자 그쪽에서 불꽃놀이를 했어요. 그리고 다시 선실로 들어왔어요. 배 안에 들어와서 누워서 MP3로 음악 듣고 TV 보고. 그런데 갑자기 배가 좌측으로 15도 각도로 확 넘어갔다가 바로 서더라고요. 의자에 누워 있으니까 사람이 15도로 확 틀리면서 쓰레기통하고 캔, 커피 이런 통은 저쪽으로 다 가서 나뒹굴어졌어요. 우당탕, 우당탕.

◇ 김현정: 쓰레기통, 맥주캔, 커피캔 이런 것이 나뒹굴러질 만큼 기우뚱?

◆ 서희근: 네. 쾅 잠깐 갔다가 잠깐 원위치로 왔기 때문에 감각을 못 느끼는 사람들은 그냥 그것을 못 느껴요, 그러려니 하고 다 지나가는 거예요.

◇ 김현정: 그럴 수 있죠, 배이니까.

◆ 서희근: 그런데 나는 그 큰 배가 이렇게 충격을 받아서 움직이는 경우는 없다, 이런 생각을 하고 바깥에 선상으로 나가봤어요.

◇ 김현정: 해병대 출신이시니까 이것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신 거군요?

◆ 서희근: 네. 나가서 보니까 안개도 별로 없고 바닷물이 호수처럼 잔잔한 거예요.

문제의 사고 지점이 “인천대교 지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즉 11시경이라는 증언자의 기억이 맞고, 군산 앞바다라는 기억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11시경 울도 부근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속도를 다시 보자. 어청도–안마도 사이에서 특히 속도가 느려진다. 세월호는 9시경 병풍도 부근에서 침몰하는데, 그곳은 원래 정상속도라면 7시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다. 인천–제주 간 13시간 30분이 걸리고, 진도에서 제주까지 90km로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7) 따라서 10시간 걸려야 할 거리를 12시간 걸렸다. 이 지역에서의 속도가 낮아진 것이 그 원인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정상속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2. 일본 잠수함과 충돌했을 가능성이 크다

“안개도 별로 없고 바닷물이 호수처럼 잔잔한 거예요”라는 위의 증언에서는 주변에 선박 등 충돌할 만한 것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선박 내부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사고인가. 당연히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정부의 대응이 전혀 이해가 될 수 없다. 또 암초 등에 의한 자연적인 재해도 아니라는 것을, 같은 이유로 알 수 있다.

당시는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던 한미독수리훈련 기간이었다. 해당 지역은 당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격훈련이 있었기 때문에, 세월호가 지나던 밤 11시경에는 항해 금지구역에서 해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연일 훈련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군사장비들이 밀집되어 있었을 것이고, 이동도 잦았을 것이다. 그래서 세월호가 항로를 이탈하여 들어갔다가, 군사장비와 관련한 사고가 난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생존자는 “쾅 잠깐 갔다가 잠깐 원위치로 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배의 바닥에 무엇이 충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잠수함과 소형 어뢰 등이 있을 수 있다. 소형 어뢰에 의해서 작은 구멍이 생겼을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는데, 우리는 이것이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 아래 [그림 7]에서 화살표가 지시하는 부위에, 배의 바닥에 커다랗게 긁힌 흔적이 있는데, 이는 어뢰에 의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 또 사진처럼 긁혔다면 빗겨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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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세월호 선저 부분의 상처

그래서 우리는 잠수함, 특히 일본잠수함과 충돌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주장한다. 울도 부근을 <네이버> 지도([그림 8]을 참조)에서 보면 바다의 깊이가 표현되어 있다. 섬 바로 동쪽과 남쪽이 짙은 푸른색인데, 이곳의 수심은 30-40m정도라고 한다. 서해 바다에서, 그것도 섬과 닿아 있는 부근치고는 매우 깊다. 잠수함이 활동하기에 적당하지는 않지만8), 수면 가까이 운항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고, 또 그래서 충돌 사고가 발생하기 쉽다. 한미독수리훈련은 공식적으로는 미국과 한국이 참여하고 있지만 일본도 참여하고 있다는 것, 미ㆍ일ㆍ한의 연습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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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울도 부근 지도

정부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결국 정권이 위기를 맞을 정도가 된 것 자체가 강력히 이를 암시한다. 즉, 만일 미국 잠수함이 배와 충돌했고, 이를 인정하고, 승객을 대피시켜서, 사상자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미국이 훈련을 하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고, 사고가 났다 해도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잠수함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먼저 아베와 대립각을 세우는 척했던 박근혜의 사기극이 탄로 날 것이다. 지방선거에도 커다란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문제다. 자국의 국력은 기울고 있고, 중국은 급부상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동북아에서 일본의 역할을 높여 나가고 있다. 그런데 일본 잠수함이 사고가 난 것이 폭로된다면 한국 여론뿐만 아니라 일본 내의 반전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일본의 집단자위권 추진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그래서 미국 측은 은폐하라고 강력히 요구했을 것이다. 천안함 사기극이 ‘성공’을 거둔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때 충돌로 좌측 뒷부분 하부에 작은 구멍이 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이 조금씩 들어오면서, 배는 좌측으로 기울어진 채로 운항을 한다. “아침에 이상해서 나가 보니까 군산서부터 좀 배가 삐딱한 것 같더라. 상당한 시간 동안 그렇게 이 배가 기울어 있지 않았나 하는”9) 생존자의 증언과, “고 박수현 군의 아버지 박종대 씨가 공개한 박수현 군이 찍은 사고 당일 사진” 대해, “박 씨는 박수현 군이 오전 6시 26분에 바다 쪽 난간을 촬영한 사진을 볼 때 배가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는 의문을 제기했”10)다는 증언은 이를 증명한다.

이후로 침몰 시각인 다음날 오전 9시경까지 10시간 운항을 한 것으로 볼 때, 파손은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파손된 부분을 응급 복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좌측 평형수를 빼고, 우측 평형수11)에는 물을 채우면서 균형을 맞추며 운행했을 것이다.

관제센터들과의 교신을 살펴보자. 세월호가 거치는 관제소는 인천, 진도, 제주가 있다. 모든 관제소에 공통으로 통하는 VHF 16번 채널이 있는데, 이 16번으로 교신할 경우 관제소, 해경, 인근 선박에 교신 내용이 모두 전파된다고 한다. 그리고 각 관제소는 고유 통신채널도 가지고 있는데 (진도관제소는 67번), 세월호는 제주 채널인 12번만을 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거짓말이다. 관제소에서 사용하는 초단파 무선통신의 일반적 통신 범위는 반경 30-40㎞12)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타 지역과 다른 선박과의 교신이 자동적으로 되는 채널 16번은 외부의 압력으로 차단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3. 4월 16일 7시경, 배가 침몰 위기에 빠지자 대피하러 맹골수로로 들어온다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전체 항적도”를 보면 위도 36도에서 35도 사이(군산 앞바다)에서는 정상 항로를 유지한다. 이 부근에서는 배에 물이 들어오고 배가 기운 응급 상황이었으므로 수동으로 운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35도 지점에서 다시 항로를 이탈한다. 이 부근은 임자도 서쪽 해상이다. 속도표를 보면 “4/16일 06:05:47, 20노트, 191.7deg(임자도와 자온도 사이의 서쪽 해상)”으로 높은 속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다시 서쪽으로 가며, 항로와 멀어지는데 배의 상태가 악화되고 점차로 통제가 어려워지는 상황을 예상해 볼 수 있다.

1) 7시경의 사고

 위도 35도 아래, 항로 서쪽으로 큰 섬이 보이고, 이 지역이 대흑산도-도초도 사이인데, 이곳에서 갑자기 동쪽으로 항로를 이탈하여 맹골수로로 향한다. “세월호 속도”에서 보면 이때를 “4/16일 07:05:19, 20.9노트, 165.1deg (흑산도 동쪽 해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속도는 20.9노트로, 사고 후 최고 속도(세월호 최고 속도에 근접)가 나오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오전 7시경 무언가 급박한 사태가 터진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증언은 다음과 같다.

세월호 사고 생존자들은 세월호가 ‘쿵’ 소리와 함께 기울기 시작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부 생존자는 이 ‘쿵’ 소리를 정상 운항 시간으로 알려진 16일 오전 8시 이전에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어 사고 발생 시각에 대한 논란을 키우고 있다.

구조된 정 아무개(16) 양은 “여객선 2층 방 안에 있었는데 ‘쿵’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배가 기울기 시작했고, 밖에 나와 보니 나를 비롯해 아이들이 중심을 못 잡고 휘청휘청하다가 넘어졌다”고 증언했다. 세월호 승무원 전 아무개 씨는 “당직 교대를 위해 기관일지를 쓰던 오전 7시 45분께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13)

실제 7시 20분경에 세월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KBS 방송보도”를 보았다는 증언14)이 있고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맹골수로로 방향을 튼 것도 정상 항로라고 보도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조타실에서 일을 했다는 사람의 글15)을 보자.

배도 비행기처럼 첨단 항해 장치가 달려 있다. 정해진 항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경고음이 울린다. …

배는 항해 중에 항로를 입력한 대로 자동항해를 하기도 하고, 작은 섬들 사이를 지나갈 때에는 수동으로 항해를 하기도 한다. …

배는 권장 항로와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 항로 변경을 신청해서 허가가 되면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 허가가 없으면 갈 수도 없다. …

이 배가 원래 다니는 길은 권장 항로로서 진도 서쪽 맹골군도 우측으로 지나가야 한다.

 

즉, “맹골군도 우측으로 지나가야” 하며, “항로 변경을 신청해서 허가”가 나지 않으면 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즉 맹골수로16)로 들어올 수 없고, 만약 들어오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위기 상황이 발생하여 맹골수로로 전속력으로 들어온 것이고, 또 정상적이라면 진도관제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항로를 이탈한 이렇게 커다란 배를 진도에서 보고만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7시경의 사고, 생존자가 “‘쿵’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사고는 무엇일까? 무언가와 충돌하는 새로운 사고가 또 일어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배는 계속 좌측으로 기울어서 항해했고, 기울기는 점차 심해졌고, 당시는 어떤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묶여 있지 않았던 화물들이 좌측으로 쏠리면서 충격음이 났고, 동시에 들어차 있던 바닷물도 좌측으로 쏠리면서 배가 좌측으로 더 넘어갔을 것이다.

이 시각의 사고가 언론에 보도된 것으로 보아, 선장이 조난신호-SOS를 쳤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조난신호는 묵살되고, KBS 방송 보도가 삭제되기까지 하는 것은, 커다란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 8시경의 사고

8시경에 어떤 사고가 다시 생기고 집중적으로 언론 등에 보도된다. <SBS 특집모닝와이드>와 <YTN 뉴스특보> 방송도, 안전행정부, 소방방재청 상황실이 작성한 “진도해상여객선 침몰사고 상황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도했는데, 사고 개요와 관련해 일시를 ‘2014. 4. 16 (수) 08:00 경’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사고 내용은 “인천발 제주행 여객선(세월호, 6,325톤) 침몰 중”이라고 나와 있다.17) “오전 8시 10분 제주해경이 ‘배와 연락이 안 된다’고 단원고에 전화를 걸어 왔다”고도 한다.18) 해수부 해상교통관제센터 항행경보 게시판 내용에는 “사고예상시간을 [애초에: 인용자] 8:30분경으로 발령하였으나 정부공식 사고발생 시간인 8:55경으로 정정”되기도 한다.19) “진도군청 상황실이 작성해 전라남도 상황실에 보낸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보고서를 보면 사건 발생일시가 지난 16일 오전 8시 25분이라고 기록돼 있다.”20) “8시 30분쯤에 배에 이상을 느꼈다”는 생존자의 증언도 있다.21) 여기서도 선장이 조난신호-SOS를 쳤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난신호도 역시 묵살된다.

그러면 다시 “세월호 속도”를 살펴보자.

4/16일 08:07:08, 20.1노트, 155.4deg (외병도 서쪽 해상, 맹골수로 진입 직전)

4/16일 08:29:36, 19.2노트, 136.7deg (맹골군도와 거차군도 사이, 맹골수로)

4/16일 08:40:22, 19노트, 128.5deg (맹골수로를 지나고 병풍도 북서쪽 해상)

즉 맹골수로 들어오기 직전 8시경에 다시 한 번 급박한 일이 생겼고, 혹은 상태가 악화되었고, 다시 구조 신호를 보냈음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속도는 20.1-19노트로 높은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조타실에서 일했다는 사람의 글을 다시 보자.

섬과 섬 사이[맹골수로 같은 곳: 인용자]에는 어선들도 있고 넓은 면적의 양식장들이 즐비하다.

이런 데는 법적으로 10-15노트 이하로 운항을 하여야 한다. 빨리 가면 너울성 파도로 인하여 어선들이 전복될 수도 있고, 파도에 의하여 가두리 양식장들이 다 날아간다.22)

“법적으로 10-15노트 이하로 운항을 하여야”하는 맹골수로에서 20.1-19노트로 운항하는 한국 최대의 여객선을 진도관제소에서는 보고만 있었다는 것을 다시 지적해 두자. 또 이 상황은 응급 상황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는 7시경에 일어난 사고가 다시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7시경에 일어난 사고는 응급 복구를 통해 안정을 일시적으로 되찾지만, 다시 기우는 상태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가 잦아지는 것은, 배에 물이 많이 차고, 좌측으로 기울음이 이미 한계를 넘어서서, 좌우균형을 잡는 통제력을 잃고, 한계상황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4. 8시 50분경의 결정적 침몰의 직접적 원인은 무엇인가

8시 50분경 배는 결정적으로 침몰한다. 왜 침몰했을까?

배가 기울고, 배 뒷부분 아래에서 “급격히 물이 차오르며” 침몰하는데, 물이 차오른 이유는 최초의 사고 시 발생한 배의 구멍 때문이 아닐 것이다. 이 부분에서 물이 급격히 차오른다면 최초 사고 후 10시간 가까이 운항이 불가능했다. 차를 싣는 배의 특성상 뒷부분에 차량의 통로가 있고, 어느 정도 배가 기울면 이 부분으로 급격하게 물이 들어오게 된다. 카페리호의 특성으로 인한, 대형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부분이다. 즉 배가 기운 것이 먼저라는 이야기이다.

개조를 해서 무게중심이 높았고, 2-3배로 과적을 했고, 짐을 고정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분명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좌측으로 배가 기울었을 때, 과적을 한 것은 배의 침수한계선을 더욱 낮추어 놓은 역할을 하고, 무게 중심이 높은 것은 정상적인 배보다 훨씬 작은 각도에서도 배를 넘어지게 하며, 고정하지 않은 짐이 쏠리면 파국을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의 세월호의 속도를 보자.

4/16일 08:44:05, 18.6노트, 129.4deg (병풍도 정북쪽 해상)
4/16일 08:45:35, 18.3노트, 135deg (병풍도 북동쪽)

4/16일 08:46:46, 18.2노트, 137.9deg (병풍도 북동쪽, 병풍도 기준 2시 방향)
4/16일 08:48:15, 17.5노트, 137.6deg (병풍도 동쪽)

4/16일 08:49:32, 16.5노트, 159.1deg (병풍도 정동쪽, 급격한 변침으로 알려진 시점)
4/16일 09:02:15, 1.7노트, 357.6deg (병풍도 동쪽, 표류중)

44분에는 18.6노트에서 49분에는 16.5노트로, 5분 동안 1.9노트(시속 3.5km) 감속하고 있다. 속도가 유의미하게 떨어지고는 있지만 “병풍도 정동쪽, 급격한 변침으로 알려진 시점”인 08:49:32에도 16.5노트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변침을 위해 속도를 줄였을 수도 있다. 침몰한 배가 북동쪽으로 표류했던 것으로 보아서 당시 조류는 배의 진행 방향과 반대 방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의 조류가 특히 센 것을 고려해 보면 속도가 16.5노트까지 줄어든 것은, 배가 한계 상황에 다가가고는 있었지만, 막다른 지점에 도달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도 있다. 즉 동력이 심각하게 떨어졌다거나, 사망상태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이 직전까지도 배가 기울어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의 승객은 느끼지도 못할 정도였다는 것도 이를 말해 준다. 이 부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실제로 변침(우회전)이 침몰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변침을 어느 정도로 했는지는 발표된 시각과 보도 매체들마다 제각각이라 확정할 수가 없다. 우회전을 한 것은 사실로 보이고, 이때 배는 좌측으로 더욱 기울게 되는데, 이것이 방아쇠 역할을 하여 침몰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당시 여기서 항해를 책임지고 있던 박 모 3등 항해사23)가 고의로 심하게 변침을 하여 배를 침몰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항해사는 생각했을 것이다: 제주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곳을 벗어나면, 섬도 없는 망망대해이다. 수심은 무려 250m이다. (8시 50분 침몰할 때 일어난 일에 비추어 다음을 알 수 있다). SOS는 칠 수 없다. 공용채널 16번은 차단된 상태이다. 진도관제소와의 연락도 차단 상태이다. 제주관제소는 멀어서 닿지 않을 것이다. 핸드폰도 멀어서 터지지 않는다. 구명정은 모두 쇠줄로 묶여 있고, 선원 탈출용으로 하나만 펴지도록 해 놓았다.24) 지나가는 고기잡이배도 기타 선박도 없다. 구명조끼를 입고 탈출하더라고, 차가운 수온에 모두 사망할 것이다. 승객은 몰살될 것이다. 여기서 전복시킨다면, 배는 물살에 섬 쪽으로 밀려갈 것이다. 구명조끼를 입고 탈출한다면, 섬 사이라 어선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핸드폰으로 119구조를 받을 수도 있다.

5. 다음과 같이 추론을 해 보자

4월 15일, 세월호는 9시에 인천항을 출발한다. 자동항법장치의 이상 혹은 기타 이유로 서쪽으로 항로를 이탈한다. 그런데 그날 밤은 한미독수리훈련이 서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 훈련에는 미국과 더불어 비밀리에 일본의 잠수함도 참여하고 있다. 밤 11시경 울도 앞바다에서 일본의 잠수함과 배가 충돌한다. 좌측 뒷부분 아래에 구멍이 난다. 사태를 파악한 세월호는 해경에 상황을 알린다.25) 해경→사회안전비서관→정무수석→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군→국가정보원→위기관리센터→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보고된다. 그리고 역시 훈련을 지휘하는 미군, 미 대사관에도 보고된다.

선박 전문가를 포함한 기관원26)들이 급히 배에 파견된다. 배의 상태를 파악한다. 다행히 상처는 가벼웠고, 위험하지만 제주도까지도 갈 수 있다고 평가하고, 그렇게 보고한다. 한편 미국은 기관의 수뇌들에게 은폐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정부의 선택의 폭은 좁다. 더구나 국내 반일 감정과 코앞의 지방선거를 고려하여야 한다. 결국 사고의 실체를 은폐하기로 한다. 후폭풍을 우려하여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후일 “청와대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며 청와대를 보호한다.

기관원들은, 항로를 이탈하는 등의 약점이 잡힌 세월호 선장 등 간부 선원을 협박해 굴복시키고 배를 장악한다. —— 배를 계속 끌고 제주도까지 가라.

그러나 선원들은 이의를 제기한다: 배가 매우 취약해서 중간에 침몰할 수도 있다. 기관원들은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그렇다면 배를 물에 빠뜨린다. 승객들을 구조하려면 배의 상처가 발각될 수 있다. 몰살시킨다. 그들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구명정을 모두 쇠사슬로 묶어 둔다. 너희들의 목숨은 보장한다. 너희들이 탈출할 수 있는 구명정만은 챙겨두어라.27) (전부다 묶여 있던 것이 아니라, 두 개는 풀어지고 오직 하나만 펼쳐졌던 것, 구명정 탑승인원이 15인이고 구조된 선원이 15인인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볼 수 없다. 또 침몰 직후 달려온 해경이 제일 먼저 구명정을 확인한 것으로 볼 때,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추론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배는 상처를 안고, 기울어진 채로 운항을 계속하게 된다. 비밀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공통의 교신 채널 16번은 차단한다. 지나는 길목인 진도관제소는 기관원들이 접수한다. 정부는 배를 계속 감시하고 있다.

4월 16일 7시경, 선박은 크게 흔들리고, 위험을 느낀 선장은 조난신고를 보내며, 급히 항로를 이탈하여 맹골수로로 키를 돌린다. 섬의 안쪽으로 들어가야만 구조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때 섬 주변에 널려 있는 통발, 그물, 기타 어업 구조물에 걸려 앞부분에 긁힌 상처가 난다.28) 조난 신고는 언론에 여러 경로를 통해 새어 나가 보도된다.

이 부분에서 조난 신고를 보내 언론에 노출되게 하고, 내륙 쪽으로 항로를 바꾼 것은 정부의 의도와 어긋난 것이다. 계속 가다 안 되면 바다에 배를 빠뜨리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고 그곳은 육지에서 멀수록 좋고, 그래서 정상 항로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각의 항로를 책임지고 있던 사람은 3등 항해사 박 모 씨이다. 또 조난신고-SOS를 치는 것은 선장의 고유권한이므로 선장과 항해사가 저항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언론에서 선장에 대한 공격이 집중되는 것은, 이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또한 선장과, 자살을 기도했던 1등 기관사 손 모 씨, 괴성을 지르며 극도의 정신불안 상태를 보인 것으로 알려진 3등 항해사 박 모 씨만이 사선 변호인을 선임했다(선장과 박 모 씨 변호인은 이후에 사임한다). 나머지 12인은 국선변호인을 선임한다. 박 모 씨는 로이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감시가 살벌함에도 불구하고 “배를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매우 중대한 내용을 발설하기도 한다. 즉 3인은 저항을 하고, 갈등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관원들은 계속 가라고 선장을 다그치며, 다시 배를 몰아간다. 아침 8시경 다시 배가 흔들린다. 다시 조난 신고를 보낸다. <SBS 특집모닝와이드>와 <YTN 뉴스특보>에는 8시경으로, 진도군청과 항행경보 게시판에는 8시 20분경 조난 신고가 기록된다. 선장이 다시 저항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결정적으로 침몰할 때인 50분에는 선장의 조난 신고가 없다. 단원고 학생이 8시 50분경에 119로 신고하여, 119에서 해경에 다시 신고하여, 8시 52분에 처음으로 조난 신고가 접수된다. 이때는 선장이 완전히 제압되어 행동불능 상태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드디어 8시 50분,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항해사는 급변침을 하고, 취약한 배는 침몰한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진도관제소는 선박으로부터의 교신을 차단한 상태에서, 상부와 교신하며 지시를 기다린다. 승객들이 119로 신고한다. 선박은 55분에 제주와 교신을 시도하고 우연히 성공한다. 진도와 선박은 이미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으므로, 교신은 시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제주와의 교신을 좀 더 살펴보자. 원래 계획대로라면 교신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렇다면 교신을 한 것으로 알려진 1등 항해사도 저항한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55분에 제주와 교신이 시작되는데, 이전에 이미 수십 명의 승객이 119에 구조요청을 하였고, 해경에도 이미 상황이 전파되었고, 전국의 소방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그는 파악했을 것이다. 그런데 배에서 아무런 구조 연락도 없었다면, 나중에 의심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정상적으로라면 교신이 불가능한 제주로라도 연락하는 척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비정상적으로 교신에 성공한 것이다. 이미 상황이 전파된 후이기 때문에, 자신의 교신이 그저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교신하는 목소리는 “배가 넘어가는” 절박한 상황을 말하면서도 사무적이다.29) 그가 정말 구조가 절박했더라면, 그리고 진도관제소에는 교신이 되지 않았다면, 50분경에 승객들처럼 핸드폰으로 119나 목포해경으로 연락을 취했을 것이다.

현장의 기관원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이미 민간 선박들이 주위에 집결하고 있는데, 만약 500여 명이 탈출한다면 구조 활동이 방대해지고 길어진다. 통제는 불가능해지며, 배의 상처는 목격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승객의 탈출을 막기 위해, 선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을 하게 한다. 임무를 마친 기관원들은 보트로 먼저 탈출한다.

구조 명령도 없는 상태에서 최소한의 ‘구조대’가 도착한다. 그러나 그들은 승객을 구조하기 위한 구조대가 아니었다. 해경은 먼저 구명정이 쇠사슬에 잘 묶여 있는지 점검한다. 승객들의 탈출을 막기 위한 조치가 잘 실행되었는지 확인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30) 당시에는 선박들이 세월호 주변에 밀집해 있어서, 탈출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고, 승객을 위해 구명정을 확인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둘째, 선원들의 신병을 확보한다. 한 승객이 학생들을 구조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을 보고만 있고, 살려 달라며 창문을 두드리는 승객의 요청도 모른 척한다.

배에 “가만히 있다” 죽으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탈출한 사람들이 생기며 구조는 시작되지만, 배의 상처는 아직 드러나 있다. 언론과 실종 가족 등의 현장 접근을 최대한 막기 위해 전원 구조되었다고 허위 보도를 한다.31)

배의 상처를 감추려는 측과 사람을 구조하려는 측의 충돌은 끝없이 이어진다. 마침내 실종자 가족은 절규한다. “이게 진정 대한민국의 현실입니까?”32)


1) SURPRISE, “[문제제기] 배치되는 두 상황 – 진실은 무엇인가?”, ≪서프라이즈≫, 2014. 5. 17. (http://www.surprise.or.kr/board/view.php?uid=5804&table=surprise_13&start=330)

2) http://www.khoa.go.kr/hpt/

3) http://www.khoa.go.kr/hpt/hptPopup.do?p_id=2940

아래 표에서 번호: Y, 사격장 구역: 서해안 가덕도부근(R-124)이 해당 지역이다.

항행경보(제14-140호) 4월 3주 해상사격훈련 실시 알림

1. 화력과-1135호 관련입니다.

2. 해상사격훈련이 아래와 같이 추가 실시될 예정이오니, 항해선박 및 조업어선에게 훈련구역 접근금지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3. 이 계획은 기상에 따라 일부 취소될 수 있으니, 후속 경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번호

사격장 구역(WGS-84)

날 짜

시간(KST)

A

대한해협 욕지도남방근해(R-72)

4월 14, 15, 17일

09:00~17:30, 18:00~21:00

4월 16일

09:00~18:00

4월 18일

09:00~21:00

B

동해 포항북방근해(R-74)

4월 14 ~ 18일

09:00~17:00

W

동해 속초근해(R-121)

4월 14 ~ 18일

08:00~18:00

X

황해 안마도북서근해(R-123)

4월 16, 17일

09:00~18:00

Y

서해안 가덕도부근(R-124)

4월 14 ~ 20일

08:00~18:00

Z

서해안 흑산도남서연안(R-125)

4월 14, 15, 17, 18일

09:00~21:00

○ 관련해도: 462

○ 출 처: 국방부(☎ 02-748-3265). 끝.

4) SURPRISE, 앞의 글.

5) “[진도 여객선침몰] 구조자 ‘전날 밤 1차례 좌로 기울어’”, ≪뉴시스≫, 2014. 4. 17.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4/16/20140416006860.html)

6) CBS 김현정의 뉴스쇼, “생존자 ‘사고 전날 밤 15도 기우뚱, 그때만 세웠어도’”, ≪노컷뉴스≫, 2014. 5. 9. (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509101508503)

7) “세월호는 오전 8시 25분쯤 맹골수도로 19노트 속력으로 진입했으나 오전 8시 49분 37초께부터 AIS 장치의 신호가 끊어지고 배가 기울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조합 제주지부 운항관리실이 마지막 위치를 확인한 시각이 바로 세월호가 맹골수도 진입한 시점과 이상 징후가 나타난 시점 한가운데 있다. 앞서 이 시각[8시 30분 전후: 인용자]에는 선내에서 ‘예정 시각보다 1시간 30분 지연된 낮 12시께 [제주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고…” (신지원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 시각 즈음 교신한 해운조합 제주운항관리실… “내용은?””, ≪경기일보≫, 2014. 4. 45.)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759711)

8) 잠수함 작전에 적당한 수심은 100m 정도라고 한다.

9) 이재진 기자, “세월호 사고 당일 오전 8시경 침몰했다는 문건 ‘또’ 실수?”, ≪미디어 오늘≫, 2014. 5. 8.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448)

10) 같은 기사.

11) 배의 아래 뒤쪽에 좌우로 두 개의 물탱크가 있다. 바닷물을 빼고 넣었다 하면서 배의 좌우 균형을 맞춘다.

12) “21일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세월호는 관제센터와 교신하는 초단파무선통신(VHF) 기기를 3대 보유하고 있다. 각각 전 세계 공용 채널인 16번, 진도 관제센터 전용 채널 67번, 제주 관제센터 전용 채널 12번에 맞춰져 있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인천 출항 시점부터 16번과 67번은 꺼놓고 12번만 켜놓고 운항했다’고 했다. 제주 관제센터 쪽 통신망만 열어 놓았다는 설명이다. 제주까지 가는 항로에서 관제센터 채널은 ‘인천 14번→진도 67번→제주 12번’으로 해역마다 다르다. 하지만 세월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출항부터 줄곧 제주 쪽 채널인 12번만 켜놓은 채 운항했다. 수사본부 쪽은 ‘(세월호 승무원이) 목적지가 제주여서 처음부터 제주 채널에 맞춰놓았다고 진술했다’고 했다.

     세월호의 이런 행위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초단파무선통신의 일반적 통신 범위는 반경 30~40㎞에 불과한데, 사고 지점인 병풍도 동쪽 3.3㎞ 해상은 제주 관제센터에서 약 90㎞ 떨어진 지점이다. 24㎞ 거리에 있는 진도센터는 채널 67번을 사용하므로 당시 채널 12번을 사용하던 세월호와는 교신할 수 없었다. 사실상 세월호가 모든 관제센터와 ‘통신 두절’ 상태인 채로 운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상보 제주 관제센터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목포나 진도 등 해역에서 (세월호를 포함해) 우리 쪽으로 교신해온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멀리 교신이 되는 것도 이례적이다. 가끔 봄철에 전파가 멀리 넘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서 연결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평상시에는 연락이 되지 않는데 날씨 같은 ‘하늘의 도움’으로 제주 관제센터와 연락이 됐다는 것이다.” (이경미, 박수지 기자, 제주/허호준 기자, 김경무 선임기자, “[단독] 세월호, 진도 관제구역 진입 때 항행 신고 의무 무시”, ≪한겨레≫, 2014. 4. 22.)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3967.html)

13) 박기용 기자, “생존자 ‘7시45분에 쿵소리’ 증언…8시 전에 사고 발생?”, ≪한겨레≫, 2014. 4. 20.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3760.html)

14)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5200517

15) 좌불상(chwabul****), “왜? 왜? 왜?”, 2014. 4. 17.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7&articleId=192912)

16)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수로는 서해에서 남해로 빠지는 배들이 다니는 길이라고 한다.

17) 이재진 기자, 앞의 기사.

18) “사고 당일(16일)부터 이튿날인 17일 정오까지의 상황을 담은 5페이지 분량의 도교육청 일지에는 지난 16일 오전 8시10분 제주해경이 ‘배와 연락이 안 된다’고 단원고에 전화를 걸어왔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 경기도교육청 정상영 부대변인은 안산올림픽 기념관에 설치된 세월호 침몰 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사고당일 오전 8시10분 단원고 관계자가 제주해경이라는 사람과 통화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유명식, “[세월호 참사][단독] ‘연락두절’ 해경에 인솔교사 연락처 알려줘”, ≪뉴시스≫, 2014. 4. 21.) (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21134410796)

19) 항행경보(제14-155호) 진도군 관매도부근 여객선 침몰 조난 협조항행경보(제14-155호)

     “16일 오전 8시 55분경 전남 진도 부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 중이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며, 세월호에는 수학여행 학생 등 승객 476여명이 탑승 중이니, 인근해역을 항해중인 선박과 어선은 조난 구조에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남해안 ∼ 진도 연안 ∼ 여객선 침몰 중

      ○ 예상 시간: 4월 16일 오전 8:55 경

      ○ 지점: 전남 진도군 관매도부근 해상

      ○ 선명: 세월호(6825톤). 끝.

     ※ 긴급사항 전파를 위해 당시 사고 예상시간을 8:30분경으로 발령하였으나 정부공식 사고발생 시간인 8:55경으로 정정합니다.” (http://www.khoa.go.kr/hpt/hptPopup.do?p_id=2955)

20) “뉴스타파가 세월호 침몰 사고가 신고시간보다 20분 앞서 발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뉴스타파는 18일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 사고 발생이 목포해경에 신고된 것보다 20분 이상 앞섰다고 기록된 상황보고서를 뉴스타파가 입수했다’고 전하며 5분짜리 영상을 공개했다. 진도군청 상황실이 작성해 전라남도 상황실에 보낸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보고서를 보면 사건 발생일시가 지난 16일 오전 8시25분이라고 기록돼 있다. 목포해경에 구조신호가 접수된 오전 8시 58분보다 33분 빠른 시각이다.” (김수정 기자, “뉴스타파, “세월호 침몰, 신고시간보다 20분 앞섰다””, ≪OBS플러스≫, 2014. 4. 20.) (http://www.ob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7702)

21) “8시 30분쯤에 배에 이상을 느꼈습니다. 119에 신고를 했고, 3, 4층으로 뛰어다니며 학생들에게 빨리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자리에 앉아 있으라’는 방송이 나오더군요. 선장이 너무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김수지ㆍ김미겸ㆍ김효은기자, “불신은 어떻게 시작됐나?”, ≪디스패치≫, 2014. 4. 20.)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420170407467)

22) 좌불상(chwabul****), 앞의 글.

23) 위험한 지역에서, 더구나 위급한 상황에서, 1등 항해사가 2명이나 있는데 3등 항해사가 책임을 맡은 부분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위급한 상황이라 1등 항해사들은 배의 응급처치에 매달렸을 것이고, 그래서 나이도 어리고 여성인 박 모 씨가 항해를 책임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4) 이 부분은 아래서 다시 서술하겠다.

25) 이때는 사고를 파악하고 사고만을 보고했을 것이다. 당연히 조난신고를 보낼 만큼 급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방송 등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4월 16일 7시에는 조난신호(SOS)를 보내서 방송에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

26) “≪조선닷컴≫이 보도한 ‘9시 13분-14분’ 사이의 교신 내용을 보면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선박 “두라 에이스”가 “옆에 보트가 탈출하네요”라고 말한다. 이 사람(들)이 누구일까?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은 9시 37분경에 도착한 해경의 보트에 구조되었다. 승객들은 물론 아닐 것이다. 선장보다도 먼저 탈출했으니, 그보다 더 힘이 센 사람일 것이고, 그러나 청해진해운의 간부가 배에 타고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 여기서 미국의 엔비씨 뉴스가 보도한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목요일[4월 24일: 인용자], 한국 여객선 선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녀와 동료들은, 배 안에 승객들이 갇혀 있는 동안, 배를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기사가 있다. 기사에는 어디에 있는 누구에게 언제 명령을 받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관제센터들과의 교신 내용 어디에도 이러한 “명령”은 없다. 그렇다면 선원들에게 이렇게 중대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어떤 사람이 배에 타고 있었고, 그 사람이 가장 먼저 탈출했다고 볼 수 있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운영위원회, “정부는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을 은폐하고 있다”, ≪정세와 노동≫ 세월호 학살 특집호(2014. 5. 17.), pp. 20-21.)

27) “YTN은 17일 오후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세월호 구명정이 쇠줄로 묶여 있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어 YTN은 ‘사람 손으로 구명정에 고정된 쇠줄을 풀 수 없었다’며 ‘선박 부실 관리로 탑승객들이 구명정을 이용해 대피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세월호 갑판 양쪽에는 탑승객 475명 전원이 탈 수 있는 15인승 구명정 40여 대가 설치돼 있었지만 이 중 단 한 척만 펴진 것으로 전해졌다.” (권보림 인턴기자, “[진도 여객선 침몰] 세월호 구명정, 1대만 펴진 이유? ‘쇠줄로 묶여 있었다’”, ≪스타뉴스≫, 2014. 4. 18.)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41809421115873&type=1&outlink=1)

28) 최원우 기자, [진도여객선침몰/구조 총력전] 악천후 속 수색… 船內 진입 이틀째 진전 없어, ≪조선일보≫, 2014. 4. 1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18/20140418002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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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 이틀째인 17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에서 해경과 해군, 민간 선박 등이 레이더 장비 등을 동원해 탐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

 

     이 사진을 보자. 배의 앞에 양쪽으로 거의 대칭으로 긁힌 흔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월호는 2달 전 도색을 했고 그동안 충돌 사고는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29) http://idolbox.tistory.com/16737에서 들어 보라.

30) “앵커: 해경의 최초 구조 영상을 보면 선원들에 대해선 다시 분노가 치밀고, 해경 초기 대응엔 아쉬움이 남습니다. 천금같은 시간이 그렇게 허둥대며 흘러갔습니다. 류란 기자입니다.

     기자: 목포해경 소속 123 경비정이 사고 해역으로 출발한 지 30분 뒤, 먼발치에서 45도 정도 기울어 있는 세월호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직까진 좌현 3, 4, 5층 선실 부분이 수면 위로 나와 있는 상황, 해경이 구명보트를 이용해 배꼬리 부분 3층 난간에서 첫 구조를 시작합니다. 푸른색 작업복의 구조자 5명 모두, 세월호의 기관사들입니다. 고속단정에서 해경 대원 한 명이 구명정 작동 여부를 확인하러 5층 갑판에 오른 뒤, 경비정도 세월호의 뱃머리에 가까이 붙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구조자는 대부분 조타실 선원들입니다. 1등 항해사 강 모 씨와 속옷 차림의 이준석 선장, 3등 항해사 박 모 씨도 줄을 잡은 채 미끄러지듯 경비정에 옮겨 탑니다. 그 사이 배는 70도 가까이 기울어 선실 대부분이 물 밑으로 가라앉았고 위기를 직감하고 바다에 뛰어든 일부 승객들만 가까스로 구조됩니다.” (류란 기자, “해경, 승객 더 구할 수 있었는데…골든타임 놓쳤다”, ≪SBS≫, 2014. 4. 29.) (http://w3.sbs.co.kr/news/newsEndPage.do?news_id=N1002366127)

31) “출발부터 오보였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난 16일 오전, 언론은 ‘경기 안산단원고등학교 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에 타고 있던 2학년 학생과 교사 전원이 구조됐다고 오전 11시 5분 해경으로 통보받았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러나 오보였다. 오후 2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는 ‘탑승객 477명 중 368명을 구조했다’고 밝혔고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그러나 이것도 오보였다.” (정철운 기자, “세월호 참사, 언론은 ‘오보 참사’”, ≪미디어 오늘≫, 2014. 4. 23.)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174)

32)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국민 호소문”, 2014. 4. 18.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cool&id=47865&pag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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